“누나 따라 간 미국서 2조 벌어 고국위해 일하죠”
청소일 하며 두번 창업대박…회사매각 후 호화생활 괴리감 귀국해 ‘후진 양성’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 청소년들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닌 멋진 삶을 살게해주고 싶습니다”
[스카이데일리, 이경엽 기자 / 2016-07-20 00:03:01]
18일 역삼동에 위치한 ‘꿈희망 미래재단’ 2층에서 만난
김윤종(63·
스티브 김) 이사장은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지난 2007년 한국에 영구 귀국한 그는 올해부터 ‘드림 데이트’라는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매일 학교와 학원 사이를 왕복하며 힘들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라난 청년들이 합리적인 임금과 8시간 근무가 보장되는 직장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출산 보조금이나 무상보육 등은 포커스를 잘못 맞춘 정책이라고 밝혔다. 돈을 받는다고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직장이 없으면 당연히 연애와 결혼이 힘들지만, 직장이 있다고 해서 연애와 결혼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무상보육 등에 저출산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예비 신랑 신부인 청년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 당사자인 두 사람만 행복하기만 하다면 살림은 어떻게든 꾸려가게 돼 있기 때문에 예산 지원은 저출산의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결혼 적령기를 맞은 청년들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혼인율 및 출산율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크게 보면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겠지만, 그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것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반쪽 행복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절반의 행복은 좋은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완전한 행복을 위해서는 청춘남녀끼리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4세 이상 남녀에 만남 기회 제공하는 ‘드림 데이트’ 프로젝트
그가 운영하는 ‘꿈희망 미래재단’은 지난달부터 ‘드림 데이트’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4세 이상의 미혼 싱글 남녀들에 만남의 장을 마련해 주는 연애정보, 커플매칭 사이트다. “예전에는 20대 후반만 돼도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였는데, 지금은 30대가 넘어도 싱글로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큰 이유 중 하나지요”
그는 드림 데이트를 준비하기 전에 몇몇 커플 매칭 사이트에 대해 알아봤다고 한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금수저들만이 이용 가능한 곳들이 많았다. 결국 거의 계약에 가까운 결혼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또 인터넷 커플매칭 사이트는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 속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단체 미팅 행사와도 성격이 다릅니다. 지자체 단체 미팅에는 그 지역에 거주하거나 직장이 가진 사람들 밖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드림데이트에서는 전국의 청년들과 해외동포 청년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지요” 24세 이상이라고 연령 제한을 둔 이유에 대해 그는 대학생들은 충분히 만날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위로 연령 상한선을 두지 않은 이유는 혼기를 놓친 35세 이상의 이른바 골드 싱글에게도 참여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27살 도미, 2번의 성공 ‘아시아의 빌 게이츠’ 언론서도 떠들썩
“27살 때 미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큰 누님이 국제결혼을 해서 미국에 계셨어요.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난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저는 누이가 있던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죠” 미국서 카페트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야간대학원에 다녔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해 1년 만에 퇴사하고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새로 입사한 회사는 전체 직원이 3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였어요. 덕분에 엔지니어는 저를 포함해서 단 두명뿐이었죠. 덕분에 비즈니스의 전 과정을 볼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회사인 ‘파이버먹스’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 첫 제품을 판매한데 이어 승승장구했다. ‘파이버먹스’는 광케이블을 제조하는 회사로 다른 회사보다 8배나 속도가 빠른 제품을 개발했다. 우수한 제품 덕택에 창업 2년 만에 파이버먹스는 경쟁 회사들을 제치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파이버먹스를 창립한 지 6년이 지나자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됐습니다. 그 때 파이버먹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회사가 있었지요. 한달 간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600억원에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회사 매각을 통해 100억원을 수중에 넣은 스티브 김은 1993년 ‘자일랜’을 창업했다. 자일랜은 접속된 컴퓨터의 대수와 관계없이 인터넷의 속도를 일정하게 연결해주는 ‘스위칭랜’을 제조하는 회사다. 창업 3년만인 1996년 3월 자일랜을 나스닥에 상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다시 3년 후인 1999년 그는 프랑스의 대기업에 자일랜을 2조원에 매각한다.
“언론이 떠들썩했습니다. 한 언론에서는 저를 가리켜 ‘아시아의 빌게이츠’라고 표현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백만장자가 됐지요. 비벌리힐즈에 대지 1000평에 욕실만 11개나 되는 집을 구입해 매일 파티를 여는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비벌리힐즈에 1000평 집에서 매일 파티…성공 뒤 외로움에 영구 귀국
하지만 화려한 성공을 채 누리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가 끝난후에 느끼는 허허로움이었다. 2006년 온가족과 함께 한 한국 여행을 계기로 귀국하기로 결심했고 2007년 3월 국내에 영구 정착하게 됐다.
“처음에는 모교인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강연 횟수가 늘면서 점점 자심감이 붙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출판사에서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습니다. 2007년 9월 그렇게 해서 저의 첫 번째 책을 출판했습니다” 2009년 11월 김윤종 이사장은 ‘꿈희망 미래리더십센터’을 만든데 이어 ‘꿈희망 미래 재단’을 설립한다. 교육사업에 문외한이던 그가 청소년에 대한 사명감만으로 시작한 3번째 창업이었다.
“재단을 통해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연변 등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북한, 네팔에서도 교육 지원 사업을 하고 있어요. 또 리더십 센터를 통해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과 ‘참인성 캠프’도 진행하고 있구요. 올해부터는 전국 84개 군부대 장병 4000여명에게 강연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시작한 사업이 바로 드림 데이트입니다” 그는 이타적인 삶이 곧 나의 행복을 위한 삶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벌어 남들만큼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 나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행복은 꿈과 목표를 이룬 다음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의미있는 일에 열정을 쏟을 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있음을 깨달았다. “가장 이타적인 삶이 가장 이기적인 삶입니다”